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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이 몬테네그로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

MIRV 2018. 7. 22. 12:45

며칠 전 Fox News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NATO 공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왜 미국이 몬테네그로 같이 조그맣고,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를 위해 러시아와 전쟁을 해야 하는가? 왜 소중한 미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에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몬테네그로 같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가? 만약 몬테네그로가 동맹을 등에 업고 러시아를 도발해서 군사 충돌이 일어난다면, 집단방위공약 때문에 3차 대전이 일어날 것이다. 몬테네그로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NYT 기사 참조 https://www.nytimes.com/2018/07/18/world/europe/trump-nato-self-defense-montenegro.html)?


몬테네그로는 2017년 NATO에 가입했다. 그 직전 몬테네그로에서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만약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친NATO적인 정책을 하지 않을 정부가 수립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몬테네그로에게 있어 NATO 가입은 타당해보이는 선택이다.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에게 홀로 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NATO의 집단방위공약의 힘을 빌리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게 있어 몬테네그로는 중요한 무역 파트너도 아닐 것이고,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있는 국가도 아니고, 군사력이 강력한 것도 아니다. 반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입게 될 피해는 엄청나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이 문제를 프레이밍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몬테네그로가 전쟁을 일으킬만한 가능성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정말 정말 낮지만 어쨌든 이론적으로 일어날 수는 있는 사건을 마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인 것마냥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문제점은 개별 사건의 기대값에 대한 초점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분석이라면 몬테네그로가 전쟁을 시작해서 미국과 NATO 국가들이 휘말려들어갔을 때의 엄청난 피해는 현실적으로 매우 낮은 발생 확률 때문에 상대적으로 미미한 기대값으로 계산되겠지만, 트럼프가 프레이밍하는 시나리오에서는 몬테네그로의 도발이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 피해가 고스란히 엄청난 기대값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될 수 있다. 왜곡된 현실 분석을 퍼뜨리는 셈이다.


둘째, 몬테네그로가 전쟁을 일으키는 가능성에 미국과 NATO 동맹국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동맹국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협상이 일어나며, 국력 비대칭이나 동맹 의존도 등 다양한 변수가 이 협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Glenn H. Snyder의 Alliance Politics의 핵심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 몬테네그로가 러시아와 같은 거대한 안보 위협에 맞닥뜨려서 동맹에 가입했다는 점 자체가 이미 몬테네그로의 NATO 의존도가 미국의 NATO 의존도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은 NATO 없이도 본토 안보나 정치 체제가 위협받지는 않지만 몬테네그로는 위협받을 수 있다. 아주 단순화시킨 양자 간 협상 구도라면, 미국의 선호도가 몬테네그로의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이 몬테네그로 때문에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 몬테네그로를 도와주지 않을 때 발생하는 비용보다 더 손해라면, 미국의 위협은 상당한 신뢰도를 얻게 된다. 트럼프가 말하는 것처럼 결코 몬테네그로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전쟁을 마음대로 시작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몬테네그로가 전쟁을 선호하는 모험주의 국가라는 근거도 별로 없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몬테네그로의 안보가 NATO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전쟁을 시작하기 어려운 것이다.


셋째, NATO의 방위조약은 회원국가가 공격당했을 경우 라는 방위공약 발동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https://www.nato.int/cps/cn/natohq/official_texts_17120.htm).

The Parties agree that an armed attack against one or more of them in Europe and North America shall be considered an attack against them all and consequently they agree that, if such an armed attack occurs, each of them, in exercise of the right of individual or collective self-defence recognised by Article 51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will assist the Party or Parties ...

동맹 공약은 항상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게다가 이 경우 공약의 내용은 몬테네그로가 전쟁을 시작하는 국가인 경우 동맹 공약이 발동되지 않을 수 있는 여지를 매우 크게 남겨두고 있다. 만약 몬테네그로가 전쟁을 시작한다면, 미국은 위의 NATO 조항을 들면서 "너네가 시작한 전쟁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줄 의무는 없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 조항 때문에 미국이 동맹 공약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국의 평판에 피해가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NATO 동맹국들, 혹은 비회원인 다른 국가들이 몬테네그로가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에 동맹 공약 발동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 라고 인식한다면, 애초에 미국이 공약을 지켜야 할 상황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몬테네그로가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한다면, 몬테네그로가 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은 더더욱 줄어들게 된다. 미국과 다른 NATO 회원국들을 전쟁에 끌어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령 미국이 "동맹 공약을 성실히 준수하는 국가"라는 평판을 지키기 위해 '불필요한' 전쟁에 빠져들어야만 하고 트럼프의 인터뷰가 바로 이러한 상황의 '부당함'을 지적하려고 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NATO의 동맹 조약 자체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시민들이 '쓸데없이' 전쟁에 휘말려들어가게 될 가능성은 트럼프의 생각보다 훨씬 낮다.


아마도 트럼프가 이러한 발언을 한 이유는 유럽 국가들과 방위비 분담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과장된 시나리오를 보여주어 국내정치적 여론을 환기시키고 지지를 얻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트럼프가 아예 NATO에서 발을 빼려는 건 결코 아니겠지만, NATO에 투자하고 있는 자원을 줄이고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유럽 국가들에게 더 많은 방위비를 얻어내려고 하는 과정일 수는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런 발언이 미국의 동맹 관련 평판을 오히려 해친다면, NATO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고, 미국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는 몇몇 국가들은 NATO 대신 러시아와 화친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될 수도 있다. NATO의 팽창이 미국에게 항상 이득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고, 동유럽의 약소국들 때문에 미국이 러시아와 원치 않은 갈등을 겪게 될 확률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협상을 위해 동맹국을 과하게 밀어붙이다보면 누구도 원치않는 결과가 터질 수도 있다. 

이미 트럼프는 유럽 국가들에게 미국이 더 이상 NATO에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메세지를 여러 차례 보냈다. 그 동안 유럽 국가들이 무임 승차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지만 (물론 미국이 유럽 국가들의 NATO 의존도를 통해서 그동안 얻어낸 것이 많다는 점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지점을 넘어서는 위협은 동맹국들이 동맹 자체의 가치에 대해서 재검토하게 만들 수도 있다.



  1. Glenn H. Snyder, Alliance Politics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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