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ain't over till it is over.

북한 비핵화 협상. 본문

Opinions

북한 비핵화 협상.

MIRV 2018. 7. 14. 05:15

5월 9일에 쓴 글.

바쁘게 학기를 보내고 있던 와중에 현실에서는 도무지 따라잡기 어려울만큼의 속도로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으르렁대던 분위기가 가라앉고 남북 정상회담도 이루어지고. 한국은 굉장히 낙관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모두가 들떠 있는 듯 하다. 태생이 꼬여 있는지라 모두가 들뜬 순간만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습관은 이번에도 여지 없이 발동해버렸다.


근본적인 힘의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내 기본 예측은 중대한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뭐 내 개인의 예측 하나가 틀린다고 해서 내 신상에 별 변화가 있을 것도 아니고 크게 잃을 것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진정한 평화가 찾아와서 모두가 전쟁 위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당연히 반길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아직은 마음을 가다듬고 기다리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유가 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부터 이야기하자면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파기.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은 향후 협상장에서 미국의 발언과 약속의 신뢰도를 크게 약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단순한 Reputation의 논리이다. 게다가 동일한 이슈에서 체결되었던 협정이라 더욱 좋지 않다.

재미있게도 내가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 이용자들 가운데에서는 트럼프의 주장인 "이란 핵협정 파기는 북한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다 라는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번에야 말로 트럼프가 북한과의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번 협정 파기도 잘된 일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엔 그냥 믿고 싶은대로 보고 싶은대로 듣고 싶은대로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다. 북한에게 이란 핵협정 파기가 비핵화 한다고 약속해봐야 언젠가 뒤통수 맞을 수 있다는 시그널 이외에 도대체 어떤 시그널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제2의 카다피, 제2의 이란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밖에 더 들겠나. 하기사 요즘 트럼프를 황상 취급하면서 숭배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하니. 


두 번째로는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의미 있는 양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양보가 얼마만큼 costly한 것이냐이다. 아직도 북한 핵 군사력이 추가적인 핵폭발 실험이 필수적인 단계인지, ICBM 발사체는 어느 수준의 기술적 완성도에 도달해있는지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북한 ICBM 능력은 사거리 측면에서는 미국 서부 도시들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도달한 것으로 보이지만 re-entry vehicle의 완성도가 의심스러운 상태이다. 이미 6차 핵실험 당시 탄두 소형화가 상당 수준에 도달한 것 아니냐 라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북한 내부에서는 이 부분에 오히려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핵실험장 폐기가 겉으로 보기에는 의미 있는 양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물론 한미 양국이 북한 핵군사력에 대해서 얼마만큼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냐에 따라서 대외적으로는 핵실험장 폐기를 띄워주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협상안에 반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후자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아니라면 조금 위험하다.


세 번째로는 비핵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다. 한 번 확보한 기술을 아예 없애는 것은 정말 힘들다. 한 사람이 모든 노하우를 다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수십 년을 노력해서 개발한 핵무기인데 어마어마한 인원이 집단 수준에서 유무형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을 죄다 물리적으로 제거하기라도 해야 하나. 어느 정도 수준의 비핵화에서 멈출 것인가. 추가적인 투발 수단 개발과 핵탄두 생산 금지? 핵탄두 생산 금지야 이미 20개 가량의 탄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별 의미 없는 제약으로 보이고 투발 수단 개발은 중요하긴 하다. 미국 본토가 정확하게 사거리 안에 들지 않는 상황이라면 미국의 핵우산 공약이 더 굳건하질 수 있고 북한의 핵 강압 시나리오에서 우리도 어느 정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본토가 사거리 안에 들게 되면 그때부터 미국의 손익 계산이 아예 달라지기 때문에 동맹 공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사실 이 정도 시나리오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협상 결과였다.

요즘 분위기는 완전한 핵 폐기까지 바라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수십 년의 노력을 들여서 어마어마한 피해를 감수했고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왔다. 그 소중한 자산을 일거에 포기한다?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아야 포기할 것이며 과연 북한이 바라는만큼의 보상을 우리가 줄 준비는 되어 있을까?


협상용으로 핵을 만들었다는 주장의 가장 큰 약점은 과연 핵개발이 유일한 협상용 수단이었냐는 것이다. 과거 중국은 미국의 '대중 포위'시도를 저지하고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 대만 해협 위기를 일으켰지만 결과는 관계 악화와 미-대만 동맹 탄생이라는 전략적 실패였다. 위기를 조성해서 상대방을 대화를 시작한다는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방은 위기 조성에 깔려 있는 의도를 다분히 공격적인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협상장에 나와도 불신이 가득한 채로 나올 수밖에 없고 애초에 협상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정상 외교, 특사 파견, 다자 기구 등등 다른 수단이 있고 이 수단들이 더 비효율적이라는 근거도 별로 없다. 수십 년이 걸리고 상대방의 군사적 공격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는 이 위험한 전략을 굳이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내게는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북한이 보이는 다소 유화적인 태도는 오히려 핵 능력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내부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제 볼장 다 봤으니 군사적 긴장도 낮추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사실이라면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기대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상으로 돌아가자는 시도 뒤에는 만약 일이 틀어지더라도 보험이 있다는 심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 정상화가 되고 다방면에서 협력이 이루어져서 애초에 북한이 핵개발을 하게 만들었던 원인, 즉 힘의 불균형이 북한이 만족할만한 수준에서 완화될 수 있다면 비핵화를 기대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직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하기까지에는 갈 길이 너무나 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