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위기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보며
올해 3월에 올렸던 포스팅. 생각에 크게 변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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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크라이나 위기가 앞으로 국제정치에 미칠 영향은 이미 실시간으로 나타나고 있고 내가 자세하게 연구한 분야도 아닐 뿐더러 구체적인 예측을 내놓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고,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도 예측이 너무나 어려울 뿐더러 향후 한국외교정책과 국방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솔직히 예측이 어렵지만.
우크라이나 위기/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타나고 있는, 굉장히 우려스럽고 왜곡되어 있는 몇 가지 주장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1) JJM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서방의 잘못이라는 주장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러시아 프로파간다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
이것과 더불어서 요즘 또 나타나고 있는 주장이 소위 "Restrainers"--미국 대전략이 좀 덜 개입주의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파--들은 반성해야 한다 라는 것.
강력하게 반대하고 싶다. 학계에서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에 대해 반발하는 시각이 분명 존재한다. 실증적인 증거가 거의 없는데도 아주 도발적이면서 틀린 주장을 펼쳐서 유명세를 얻고, 그게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가에 대한 이유 있는 비판은 항상 존재해왔다. 최근 IR 연구의 추세가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고, 그 점에 대해서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작년 Paul Musgrave가 내놓은 글로 한참 이슈가 되었던 소위 정치학판 "Lab Leak"--정치학계에서의 아이디어가 정책결정자들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오용되었을 때 얼마나 현실 세계에 위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우려할만한 부분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궁극적인 책임은 오용한 사람들에게 있다. 정치학자가 1) 정책결정자들과 긴밀하게 연계해서 의도적으로 그런 주장을 펼치고, 2) 정책결정자들이 그 주장을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명확한 근거가 있지 않는 이상,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내고 이용하는 사람에게 책임이 가는 것이지, 순수한 학문적 의도를 바탕으로 논리적 주장을 펼치는 정치학자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JJM의 아카데믹 커리어를 살펴보았을 때, 이 사람이 어떤 정책결정자들과 (심지어 러시아 정책결정자들!)과 그런 연계를 가지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기 주장을 펼쳤으리라고 믿는 것은 터무니없다. 원래 JJM은 Ken Waltz처럼 현실 세계에서 도저히 말이 안되는 것 같은 주장이라도 자기가 세웠던 논리적 전제를 기반으로 도출된 것이라면 지독하고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다. 왜 실증적인 반례에 비추어 이론을 수정하지 않느냐고 비판할 순 있겠지만, 네가 러시아 프로파간다에 근거를 제공했으니 자아비판을 해라 라는 주장은 어떻게 보면 학문적 검열에 불과하다. 아마 러시아가 영토주권의 규범, 국제법에 대한 존중 등 소위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핵심요소들을 완벽하게 깔아뭉개고 있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듯 하다.
Restrainers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나는 개인적으로 러시아의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이 소위 안보 딜레마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라는 견해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Jervis가 Perception and Misperception in International Politics에서 지적했듯이, Spiral Model--혹은 Security Dilemma Model의 한 가지 단점은 모든 이해 관계의 충돌이 마치 피할 수 있었던 것이고, 불필요한 인지적 오류나 한계에 의해서 발명되어버린 것이었던 것처럼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불가피한 이해 관계의 충돌이 존재한다. 나토의 동진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되었었고 당시 푸틴은 오히려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환영한다는 발언까지 남겼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애초에 2014년 이전엔 나토 가입에 대해서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고 2014년 돈바스 사태/크림 반도 합병 이후부터 나토 가입에 보다 진지한 태도로 임하기 시작했으며, 그때조차도 독일/프랑스 등 나토 내부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입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 (만장일치제니까). 다시 말해서 이번 전쟁은 러시아의 '안보 불안'을 자극할만한 유인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하거나, 있었다고 해도 정말 극히 미세한 부분이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언제나 미국이 다 잘못했어 라고 앵무새처럼 지저귀면서 사실 관계에 대한 파악이 전혀 안 되어 있는, 아니면 할 의지조차 없어보이는 한국 특정 언론들의 행태는 참 특기할만하다). 세상 모든 갈등과 분쟁이 다 딜레마인 것처럼 해석하다보면 때로는 정말 무력을 사용해서 현상을 타파하려고 하는 국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게 된다. 이런 경우는 "딜레마"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Restrainers들이 마치 러시아와 손잡고 러시아의 안보 불안이 정당한 근거가 있다는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런 류의 주장을 펼쳤다고 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어떤 분쟁은 안보 딜레마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뒤집어 보면 다른 분쟁은 안보 딜레마 때문에 비롯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반례에 부딪혔다고 해서 네 주장은 항상 다 틀렸다 라고 이야기하거나 너는 그저 프로파간다에 부역하는 정치꾼일 뿐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역시나 학문적 검열에 불과하다.
2) 전쟁 아니면 평화 라는 극단적 이분법.
언제나 우리가 군사적 강압 정책에 대한 효용성을 논의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전쟁하자는 거냐? 전쟁의 비용에 대해서 생각이나 해봤냐?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경제는 파탄이 날 것이다. 강압 정책은 전쟁광들이나 옹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 아니면 평화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에 불과하다. 정치학계에서 나왔던 대부분의 강압 정책에 관련된 논쟁은 궁극적으로는 분쟁 격화 방지, 분쟁 발생 방지를 목표로 한다. 강압 정책을 연구하고, 위기시 강압 정책의 효용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정책이 궁극적으로는 분쟁이 격화되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강압 정책이 곧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면 1) 강압 정책이 실제로 전쟁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 라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더욱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2) 강압 정책이 실제로 전쟁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라는 실증적인 증거가 더욱 압도적이어야 한다. 나는 학계에서 1)과 2)에 대해서 Yes라고 대답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론적으로 볼 때, 수없이 많은 audience cost theory, military mobilization, military threats, verbal threats에 관한 연구들은 위기 상황에서 수사적, 혹은 군사 행동을 수반한 강압 정책들이 이론적으로 어떻게 분쟁 격화 방지에 공헌할 수 있는가에 대한 주장을 제시해왔다. 역시 수많은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관찰 데이터와 실험 데이터, 사례 연구들에 기반해서). 물.론. 실제로 강압 정책이 전쟁 발생 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주장도 있고,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들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더 바람직한 해석은, 그리고 더 바람직한 질문은 그럼 언제 어느 조건에서 강압 정책/외교적 협상이라는 다양한 수단들이 어떤 방식으로 분쟁 격화 방지라는 목표에 공헌하는가를 묻는 것이지, 그저 무턱대고 강압 정책은 전쟁광들이나 옹호하는 것이고 평화에 역행하는 움직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그저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하긴 정치인들이 프로파간다에 목숨 거는 것이 어디 하루이틀이겠냐마는).
핵안보연구 분야에도 비슷한 비판이 존재한다. 오래전부터 핵 군사력 균형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좀 더 효율적인 핵억지에 공헌한다는 주장이 존재했고, 최근 연구들에 의해서 더 힘을 얻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이런 주장에 대해 특히 핵 군축 분야 활동가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Nuclear wars cannot be won, so the nuclear balance does not matter, and those who argue otherwise are the advocates of nuclear war.
아 진짜! 그게 아니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핵 군사력 균형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더 확고한 핵억제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내 연구가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고.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핵 군사력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우리가 핵전쟁해서 이기지! 가 아니라, 설령 핵전쟁이 터져도 우리가 더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는 핵 군사력을 확보할 수 있고, 상대방도 그걸 인식한다면, 굳이 우리에게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핵 전쟁광으로 몰고가는 것도 최소한 학문적 검열에 불과하거나, 기본적인 논리 구조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전자에 더 가깝다고 나는 의심한다).
우크라이나의 영웅적 항전에 감동받을 수 있고,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는 있지만, 최소한 선은 넘지 않으면서 응원하는 게 좋지 않을까.